"난 동성애자임을 숨겨야했다" 외신도 우려한 성소수자 낙인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 혐오가 서울 이태원 클럽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 방역의 성공 원인으로 꼽힌 ‘자발적 진단 검사와 개인정보 추적 및 공개’ 방식이 성소수자의 경우엔 통하지 않는다는 평가다.
'집합금지명령'이 내려진 이태원의 한 클럽. [연합뉴스]
한국에서는 지난 6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한 29세 남성이 이태원의 나이트클럽 5곳을 방문한 후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 남성이 방문한 클럽 중 여러 곳은 성소수자들이 주로 다니는 곳으로 알려졌는데, 신상 공개를 꺼린 방문자들이 익명으로 기록을 남겨 접촉자 추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만 약 3112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1일(현지시간) “한국이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증이 접촉자 추적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성소수자들이 개인정보 공개를 통한 방역 방식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동성애자라고 밝힌 한 30대 한국 남성은 가디언에 “코로나 사태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 클럽을 방문한 게 큰 실수였다”며 “나는 일주일동안 이성을 좋아하는 척하며 동성애자임을 숨겨야 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들, 사회적 낙인 두려워해
블룸버그 통신도 성소수자들이 갖는 두려움은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2017년 갤럽 여론조사 결과 한국인 58%가 동성 간 결혼에 반대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한국은 성소수자에 대한 법적 보호도 낮은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곽혜원 대경대학교 교수는 블룸버그 통신에 “한국에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적대감이 존재한다”며 “이로 인해 감염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검사를 받기보다는 뒤로 숨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성소수자 운동가는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가족·친구·직업을 잃을 위험에 놓여있다”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증오가 없으면 자진해서 진단 검사를 받고 안전거리도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AP통신은 12일 이번 사건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커지고 있고, 이는 성소수자들이 자발적으로 진단 검사에 나서는 것을 두렵게 만든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어 “한국에서 동성 간 결혼은 합법적이지 않고, 몇몇 연예인 등을 제외하고는 유명인 가운데 동성애자임을 밝힌 사람은 없다”며 “한국에서는 최근 몇 년간 성소수자에 대한 평가가 점진적으로 나아졌지만, 보수적인 한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여전히 깊다”고 평가했다.
한 성소수자 권익 옹호 단체 관계자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태원 클럽을 방문했던 성소수자 수십명이 전화를 걸어 진단 검사를 받을 경우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렵다고 말했다”면서 “성소수자를 겨냥한 범죄는 없지만 성소수자 사이에서는 낙인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한 성소수자는 “요즘 들어 더 고립된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이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분노를 성소수자에게 옮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