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비정규직 - 운인가 능력인가.jpg
인생의 시작점에 선 청년들
그들을 가장 화나게 한 건 일자리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차별을 바로 잡는 것’
그것은 공정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올해 31살, 성희씨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서울교통공사에 합격했습니다
지하철을 운영하는 이 회사는 서울 산하 공기업으로 취업준비생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곳입니다
공기업 답게 탄탄한 복지제도와 안정적인 고용환경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뉴스에서 연일 사상 최악의 구직난, 역대 최고 실업률이라고 할 만큼 안정적인 일자리가 줄어든 요즘
성희씨는 이 회사 공개채용에 합격하기 위해 신림동 고시촌에서 꼬박 2년을 시험준비만 했습니다
자신이 이렇게 힘들게 얻은 것을 누군가는 쉽게 얻은 것 같다는 생각이 그녀를 불편하게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능력주의 세상이라고 하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고
노력해서 목표를 달성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것.
그게 옳고 공정하다고 생각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주경야독 끝에 당당히 합격했다는 은엽씨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 그도 이번 사건으로 자신의 노력이 허무해졌다고 말합니다
‘나는 노력해서 이룬걸 누군가는 운 좋게 얻었다면 그건 불공정’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과연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남에게 주어진 행운을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 노력과 능력이 하찮게 여겨지는 건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이죠
은엽씨가 보기에 능력보다 운이 좋았던 사람
바로,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창수씨 이야기 입니다
지하철 외주 용역회사에 들어간지 2년만에 공사 정직원이라니
그는 이 곳에서 스크린도어 수리를 맡고 있습니다
2년전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한 젊은이의 죽음에 누구보다 마음아파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
고장난 스크린도어를 홀로 고치고 있던 김군은 플랫폼을 향해 달려오는 열차를 미쳐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스무번째 생일 하루 전에 일어난 비극
시간에 쫓겨 끝내 먹지 못한 컵라면이 비정규직이었던 그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청춘을 허망하게 보낸 후
정부와 서울시는 비정규직들의 불운한 상황을 개선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종류의 일을 해도 낮은 임금과 불안을 안고 살던 김군과 그의 동료들
이런 불운한 현실을 바로 잡는게 공정함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전보다 일하는 환경은 훨씬 나아졌지만 정규직 전환이라는 자신의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요즘 마음에 자꾸 걸립니다
그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 서운함도 있지만 그가 이해하게 된 것도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정규직 전환이 불공정하다고 합니다
또 누군가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았던 저임금이나 고용불안이 불공정하다고 합니다
모두가 피해자가 된 이 상황.
답답한 마음에 법의 판단을 듣고 싶어하는 기존 정규직 직원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젊은 사원들이 주축이 되어서 헌법소원을 제기한 겁니다.
그들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분노할 곳을 찾지 못하는 을들의 전쟁
때로는 이 분노의 화살이 엉뚱한 대상을 향하기도 합니다
지난 7월, 철도공사를 상대로 12년동안 긴 싸움을 해왔던 KTX 해고 승무원들의 복직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복직 관련 기사 댓글엔 청년들의 분노가 가득합니다
댓글의 핵심은 ‘복직 과정에 시험이 없었고, 그것은 부당한 특혜’라는 것입니다
12년을 돌고돌아 이제야 제자리로 가는 길인데 예상치 못한 일부 반응이 당황스럽습니다
시험을 거쳐 얻은 지위와 자격만이 옳다는 우리의 믿음
혹시 시험이 우리의 공정성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아니었을까요?
여기 인간의 공정한 마음을 알아보는 <최후 통첩 게임>이 있습니다
두 명의 참가자 중 무작위로 선출된 한 명이 제안자가 되고 한 명은 응답자가 됩니다
제안자에겐 행운의 10만원이 주어지는데
본인이 원하는 만큼 응답자와 나눠가져야 합니다
10만원 중에서 9만원을 주든 만원을 주든 그건 제안자의 마음
단 상대방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둘 다 돈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게임
만약 여러분이 10만원을 손에 쥔 제안자라면 상대방과 얼마의 몫을 나눠가지시겠습니까?
실험에 참가한 이들은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
제안자들은 대부분 5만원을 제안했고 응답자들은 모두 그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간단한 시험을 거쳐 제안자를 정해보기로 했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단 5분, 공공기관 입사시험에 나온 다섯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시험은 단순히 제안자 역할을 정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간단한 시험을 거쳤을 뿐인데
제안자가 된 이 들은 전보다 적은 돈을 제안하고
다섯 팀 중 단 한 팀을 제외하곤
이 불평등해진 몫을 순순히 이 불평등해진 몫을 받아들였습니다
간단한 문제를 푼 것만으로 제안자라는 위치를 행운보다는 능력과 노력에 따른 보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단돈 10만원을 놓고도 시험으로 달라지는 평가와 대우.
우리는 인생의 성공을 두고서 꽤 오랫동안 최후통첩게임을 해왔던 것은 아닐까요?
한국 전쟁 이후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보다는 각자의 노력과 능력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사회에 퍼져있었습니다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출세와 보상은 그만큼 공정하다고 믿어왔습니다
시험을 통해 대학에 들어가고, 일자리를 구하고, 더 많은 몫을 얻고
그렇게 개인도 성공하고 국가도 함께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시험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성장으로 나눌 몫이 많았던 그 시절
시험은 다 같이 경쟁해 능력 좋은 이들을 선발하는 공정한 제도였습니다
하지만 성장은 점차 둔화됐고
시험의 문은 좁아져만 갔습니다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경쟁이 더 심화될 수록
성 안의 사람들도 이 자리가 유일한 생명줄이 되어
더 팍팍한 삶을 살아갑니다
더 한 곳은 성 밖입니다
문을 통과하기 위해 무한 노력 경쟁은 심해지지만
문은 나날이 좁아져갑니다
그러다보니 성 안에 손쉽게 들어가려는
운좋은 이들의 반칙은 커져만 갑니다
성 안의 사람들도
성 밖의 사람들도
왜 이토록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요?
SBS 스페셜 181111 운인가 능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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