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떠밀려 기부할 판” 눈치 보이는 재난지원금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카드사 온라인 신청이 시작된 11일 한 카드사 홈페이지 화면에 띄워진 지원금 접수 안내문. 연합뉴스
“말로는 ‘자발적’ 기부라는데 분위기는 ‘강요’나 마찬가지네요.”
직장생활 12년차인 회사원 윤모(39)씨는 최근 사내 한 임원으로부터 특정 직급 이상 직원은 긴급 재난지원금을 자발적으로 기부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애초 재난지원금을 전액 사용할 계획이었던 윤씨는 “20~30%라도 기부를 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라며 “특히 임원들 사이에선 국난 극복을 위해 기부는 당연한 선택이란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가구당 최대 100만원을 지급하는 재난지원금 신청과 관련해 ‘기부 강요’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자발적 기부’ 메시지를 거듭 강조하면서 공직사회는 물론 일부 민간기업에서도 임직원들에 대한 기부 독려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어서다. 이에 재난지원금 신청자들 사이에선 “기부를 안 하니 괜히 눈치가 보인다”는 반응부터 “제3자가 개인의 선택에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불만까지 나오고 있다.
◇‘강요된 기부’ 거부감 적지 않아
재난지원금 신청 이틀째인 12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기부를 독려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불만이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에 이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이날 “재난지원금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힌데다, 삼성 현대차 등 일부 대기업도 임원들에게 기부 동참에 나설 것을 공개 권유하면서 “기부 안 하면 죄인 취급 당할 것 같다”는 볼멘소리가 이어진 것이다.
아무리 ‘자발적’이란 조건이 붙어도 기부 동참 선언을 한 조직의 구성원으로선 결국 등 떠밀려 기부에 나설 수밖에 없을 거란 전망이 많다. 주부 조모(44)씨는 “기부를 당연시하는 공무원 남편과 얼마 전 말다툼까지 벌였다”며 “공무원 사회에서는 ‘6, 7급 이상은 무조건 기부’라는 분위기가 이미 퍼져 있다더라”고 토로했다.
재난지원금 기부에 따라오는 세액공제 혜택(15%) 때문에 추후 연말정산 시 회사 가 나의 기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직장인은 “동료들 사이에선 다만 몇 만원이라도 기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농담처럼 오간다”며 “이런 식으로 압박 분위기를 조성할 거였다면 애초에 주지 않는 게 나았다”고 씁쓸해했다.
◇초기 기부신청액 예상보다 저조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신청 첫날인 11일 하루 전국에서 180만7,715가구가 국내 9개 카드사를 통해 재난지원금(총 1조2,188억원)을 신청했다. 하지만 아직 기부액은 예상보다 미미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11일 재난지원금 신청이 가장 많이 들어온 카드사는 신한카드(2,556억원)였는데 이 중 기부 신청액은 0.2%(6억원)에 불과했다. 두 번째로 신청금액이 많았던 KB국민카드(2,179억원)의 기부액(15억원) 비율도 0.7% 수준에 그쳤다. 기부금액 비율이 가장 높았던 하나카드에서조차 기부액(17억원)은 전체 재난지원금 신청액(658억원)의 2.6%에 불과했다. 지원 대상을 당초 70%에서 100%로 넓히며 ‘기부를 통한 예산 절감’을 기대했던 정부의 계획과 현재로선 큰 격차가 느껴진다.
행안부는 신청 첫날 실수로 기부 버튼을 눌러 의도치 않게 기부 신청을 한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기부의사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도록 전액기부 선택 시 팝업창을 통해 재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도록 카드사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아무리 좋은 취지여도 기부는 강요되어서는 안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