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재택근무 고작 13%…'도장' 찍으러 목숨 걸고 출근한다
도쿄에 긴급사태선언이 발효된 첫 날인 지난 7일, 출근길의 한 직장인은 TV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결재 서류에 도장을 받으려면 출근을 해야 한다”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일본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정부가 재택근무를 권장하고 있지만, 실제 재택근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본 파소르 종합연구소가 최근 실시한 인터넷 설문조사에 따르면 재택근무 비율은 13.2%에 그쳤다. 전국 20세~59세 정사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다. (3월 9~15일, 유효응답 2만1148건)
후생노동성이 메신저 앱인 LINE을 통해 실시한 전국단위 조사에선 재택근무 비율이 더 낮았다. 응답자 약 2400만명 가운데 “재택근무로 일을 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고작 5.6%에 그쳤다. (3월 31일~4월 1일 실시)
이처럼 재택근무가 좀처럼 확산하지 못하는 이유로 일본 언론들은 ‘도장 문화’를 꼽았다. 사내 문서를 아무리 전자화 하더라도, 결국은 상사의 실물 도장을 찍어야 결재가 완성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재택근무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대표적인 인터넷 기업인 LINE 조차 계약은 종이와 도장이 기본이다. 사원들에게 재택근무를 권장하지만, 계약 관련 업무를 하는 사원은 출근을 할 수 밖에 없다.
LINE이 한 달에 처리하는 종이 계약서는 1000건이 넘는데, 일일이 도장이 필요한 것이다. LINE은 지난해 6월부터 전자계약 시스템 도입을 위한 작업을 진행해왔지만, 오는 5월 초에 겨우 우선적으로 계약 30건 정도를 전자화 한다는 방침이다.
한 농업 관련 스타트업 기업은 “계약서를 제본해서 도장을 찍고, 인지(印紙)을 붙여서 계약 상대에게 우편으로 보내면, 도장을 찍어서 돌려보내준다. 이렇게 하는데에만 1주일은 걸린다”고 말했다.
9일 아사히 신문도 “일본의 도장 문화가 재택근무의 장벽”이라고 보도했다.
3월 중순부터 주 4일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한 여성(28)은 영상통화나 채팅시스템 등을 활용해 보고서 등을 작성하고 있다. 하지만 서류에 도장을 받으려면 일주일에 1번은 회사를 나가지 않을 수 없다.
이 여성은 “감염의 위험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 목숨을 걸고 도장을 받으러 회사를 나가야 한다. 종이와 도장이라는 일본의 습관은 사회적 과제”라고 말했다.
이처럼 일본에서 종이와 도장 문화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종이에 도장이 없으면 진짜라는 보증이 되느냐”라는 불신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약서 원본이라는 걸 증명하려면 “누가 언제 작성했고 누구 앞으로 보낸 것인지” 기록이 있어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닛케이 신문은 데이터 조작이 어려운 클라우드 서비스나 전자문서에 입력시간을 표기하는 서비스, 전자 도장 인증 시스템 등이 업계에서 개발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정보경제사회추진협회(JIPDEC) 등이 3월 발표한 ‘기업 IT이용활동조사 2020’에 따르면, 계약 전자화를 일부라도 사용하고 있는 기업은 40%를 조금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택근무를 하기 위한 시스템 환경이나 사내 규정을 정비한 기업도 30%에 못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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