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했다 큰코' 각국이 최고라 극찬한 싱가포르는 어쩌다 방역위기를 맞았나
경북 예천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환자 한 명이 8일 만에 30명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집단 감염이 일어났다. 정부는 한 명의 환자라도 자칫 방심하면 집단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례로 보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예천 사례는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를 성급히 해제한 뒤 환자가 다시 급증하기 시작한 싱가포르와 상황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부는 싱가포르 사례를 예의주시하며 생활방역 체계 등을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예천군 사회적 거리두기 방심했다가 큰 코
예천군에 따르면 이달 9일 경로당 행복도우미인 40대 여성이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가족과 지인을 중심으로 추가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 환자와 밀접 접촉한 시모와 남편, 아들과 직장 동료 등 4명이 같은 날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16일까지 관련된 확진 환자의 수가 31명으로 늘었다. 환자들은 확진 판정을 받기 전 식당과 마트, 카페, 목욕탕, 병원, PC방 미용실 등 다중이용시설 여러 곳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당국은 이들간의 연결고리는 파악했지만 어디에서 감염이 처음 시작됐는지는 아직 찾고 있다. 보건당국은 가족 중 최초 증상자인 아들이 첫 환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역학조사를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당국은 예천 집단감염이 환자가 한 명이라도 발생하면 언제든 지역감염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사례라고 평가했다. 권준욱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15일 하루 전국에서 22명의 환자가 발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1명의 연결고리가 30명 혹은 상당히 많은 규모의 유행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예천군 사례가 수도권에서 비슷하게 일어났다면 감염의 속도가 더 빨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천군은 올해 3월 주민등록인구현황 기준으로 인구밀도가 1㎢당 약 83명이다. 1㎢당 약 1만 6000명이 사는 서울의 불과 200분의 1 수준이다. 권 부본부장은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이 아니더라도 시군구 단위에서 언제든 집단전파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경고를 보여준 사례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무엇보다 예천군 소규모 집단감염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소홀히 했을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경북 예천군 등에서 확진자들이 식당, 술집, PC방 등 다중이용시설 여러 곳을 방문했고 이것이 확산돼 이달 9일부터 오늘까지 불과 일주일 사이에 30여 명의 환자가 발생했다”며 “한 사람이 30명 남짓한 가족과 이웃을 순식간에 감염시키는 이번 사례가 다른 지역에서의 추가적인 지역사회의 감염을 막는 예방주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코로나19 확산 초기만 해도 방역 모범국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지금은 하루 400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성급히 완화한 후 학교와 이주노동자 기숙사를 중심으로 집단 감염이 일어났다. 싱가포르의 한 공무원이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이주노동자 기숙사를 마스크를 쓴 채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제공
초기 잘했다고 안심했다가 곤혹스러운 싱가포르
불씨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했을 때 다시 코로나19가 확산할 수 있다는 교훈은 싱가포르를 통해 이미 알 수 있다. 싱가포르는 3월까지만 해도 코로나19 확진 환자를 수백명 내로 통제하며 방역 모범국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싱가포르는 환자를 발견하면 2시간 내로 역학 조사를 실시해 감염원을 찾아내고 법에 의거해 격리하는 강력한 방역책을 써 왔다.
싱가포르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중국 본토 및 한국의 대구·청도 방문 이력이 있는 이들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를 맨 처음 실시한 국가 중 하나다. 또 감염 가능성이 있는 이들에 대해 엄격한 격리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를 비롯한 국내외 언론들은 싱가포르가 코로나19 억제 시금석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평가는 한 달 만에 뒤집혔다. 싱가포르에선 이달 16일 하루만에 신규 환자가 447명 발생하며 총 환자수가 3699명으로 늘어나는 등 한 달 사이 환자 수가 14배로 늘어났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같은 확산 이유로 싱가포르 정부가 너무 성급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지난달 23일 학교를 다시 열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이틀 만에 유치원과 국제학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싱가포르 언론을 중심으로 성급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싱가포르 교육부는 결국 2주 만에 개학을 철회하고 재택수업으로 전환했지만 이미 불씨가 번진 뒤였다. 이달 6일 이주노동자의 집단 기숙시설 2곳에서 확진 환자 91명이 나온 것이 지역감염의 결정타가 됐다. 싱가포르에는 이주노동자 20만명이 집단 기숙시설 43곳에서 모여 살고 있다.
싱가포르 방역당국은 이주노동자가 쇼핑센터를 찾았다가 감염된 뒤 집다 기숙시설로 돌아가 집담감염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고 있다. 싱가포르 보건당국에 따르면 지금까지 기숙사 중 17곳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고 이달 16일 발생한 환자 중 90%인 404명이 이주노동자 기숙사와 연관된 환자다. 집단감염에 취약한 이주노동자 기숙사 정책을 세우지 않은 채 성급하게 학교를 열면서 결국 조기 방역 모범국에서 확산 우려국가로 전락한 계기로 작용했다.
싱가포르는 개학 취소에 이어 결국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제하는 통제정책으로 전환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달 7일부터 내달 4일까지 함께 사는 사람 외에는 가족과 친척도 만나지 못하고, 재택근무를 하지 않는 기업 대표는 아예 고발하는 ‘서킷 브레이커’를 도입하는 강경노선을 펴고 있다. 해당 법을 어긴 이는 7000달러(약 860만 원) 벌금을 물리거나 6개월 징역에 처해지는 엄격한 규제다. 하지만 집단 기숙시설을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확산세를 막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싱가포르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이달 16일 브리핑에서 “참고할 만한 좋은 외국의 사례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앞으로의 전략을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안정된 상황에서 학교의 물리적 개학을 실행했던 싱가포르 사례는 당연히 예의주시하고 분석하고 평가해야 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등교 개학 시기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달 16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싱가포르의 경우, 등교개학 후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학교가 감염확산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자 불과 2주 만에 다시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다”며 “교육부에서는 관계기관 및 지역사회와 함께 등교개학 시기와 방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학교 방역환경 개선을 서둘러 추진해달라”고 주문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