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중구 명동의 전자제품 매장 '프리스비'에서 손님 10여명이 물건을 구경하고 있었다. 프리스비는 미국 회사 애플의 제품 판매를 대행하는 곳이다. 회사원 한모(30)씨는 "동생이 지원금 받는 대로 꼭 '에어팟'을 사달라고 해서 가격을 알아보러 왔다"고 말했다. 에어팟은 애플이 판매하는 무선 이어폰이다. 매장 입구에는 '정부 재난지원금 사용 가능'이라고 적힌 안내판 옆에 에어팟 사진이 걸려 있었다. 명동 프리스비 직원은 "'정부 지원금으로 에어팟을 살 수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하루 20통 넘게 온다"고 했다. 지난 14일 광화문 프리스비 직원은 "하루 매출 중 80% 정도가 재난지원금에서 나왔다"고 했다.

앞서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이 시작된 지난 11일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원금을 현금화하는 방법이 있다'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젊은 층에서 인기가 많은 애플 제품을 사서 다른 사람에게 되팔면 된다는 내용이다. 에어팟 최신 기종인 '에어팟 프로'의 정가는 32만9000원, 1인 가구 기준 지원금은 40만원이다. 온라인 중고 판매 사이트에는 미개봉 에어팟 제품이 20만원대 후반에서 30만원 정도로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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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국내 애플 판매 대행점인 프리스비 명동점 입구에 ‘정부 재난지원금 사용 가능’이라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정부가 소상공인을 돕자며 대기업을 제한하도록 지원금을 설계하자 일부 외국계 기업에 이익이 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인원 기자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 미국 회사인 애플 제품이 특수(特需)를 맞았다. 일본의 렉서스, 독일의 BMW 등 한국에 지점이 있는 외국 자동차 기업들은 '서비스센터에서 재난지원금 결제가 가능하다'며 고객을 끌어들인다. 정부가 '소상공인·골목상권 소비를 진작한다'는 이유로 국내 일부 매장에선 지원금 사용을 막은 반면, 외국계 기업들은 배를 불릴 호기를 맞은 것이다. 정부가 지원금을 설계할 때 국내 대기업을 제한하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실제 시장에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정부가 지원금 사용처를 업종·지역별로 제한하면서까지 시장 개입에 나선 것은 소상공인을 돕고 지역 경제를 살리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15일 취재 결과 일본, 미국 등 외국 자본에 이익이 돌아가는 상당수의 제품이나 서비스 구입에 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백화점·신세계백화점 등 국내 대기업이 운영하는 백화점에선 지원금 사용이 안 되지만, 구찌·루이비통 등 자체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명품 판매점에선 쓸 수 있다.

소상공인·골목 상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글로벌 대형 기업이 재난지원금의 수혜를 보는 건 정부가 지정한 사용 제한 업종을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형 전자판매점으로 분류된 매장에선 지원금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디지털프라자, LG전자베스트샵, 전자랜드 등 국내 기업 제품을 취급하는 매장들은 지원금 사용 제한 업장으로 분류됐다. 서울 가로수길에 있는 애플 직영 매장에서도 지원금을 쓸 수 없다. 하지만 '판매 대행점'이라는 변수가 있었다. 프리스비·윌리스 등 국내에서 애플 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중소 규모 판매점은 백화점·대형 마트 입점 매장이 아닌 이상 판매 제한 근거가 없다. 이 매장들에서 제품을 사도 외국계 기업에 이익이 돌아간다. 행안부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대리점에서도 지원금을 사용할 수 없다.

행안부 관계자는 애플과 국내 업체 간에 차별이 생긴 것에 대해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고 했다.

외국 기업들은 지원금 사용 제한의 허점을 이용해 마케팅에 나서기도 한다. 일본 자동차 기업 렉서스의 딜러사인 'L&T렉서스'는 최근 고객들에게 "서비스센터에서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렉서스 측은 "지방에 있는 센터에서도 사용 가능하다"고 했다. 독일 자동차 브랜드 BMW 서비스센터도 전화로 "지원금 사용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반면 현대자동차 직영 서비스센터의 경우 본사가 있는 서울에서만 지원금을 쓸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난지원금이 사치품 등 외국 기업의 비싼 물품에 사용된다면, 정부가 목표로 했던 경기 부양 효과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백화점·대형 마트 제한이라는 정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 취지에 반하는 사례가 너무 많아 국민 혼란만 가중되는 결과를 낳는 것 같다"고 했다.

[구본우 기자 gugija@chosun.com] [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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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외국계 대기업, 재난지원금 특수 애플 판매 대행점 프리스비 "하루 매출 80%가 재난지원금" 온라인선 에어팟 구매해 되팔기… 지원금 현금화 방법까지 공유 BMW·렉서스 서비스센터도 "재난지원금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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