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평가·수업장면 캡처…원격수업에 떠는 교사들
(서울·세종=연합뉴스) 박성진 이효석 기자 = 서울의 한 중학교 교장은 지난 21일 전체 학부모에게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내 "온라인 수업 장면을 캡처해 인터넷에서 공유하면 예외 없이 엄중히 처벌하겠다. 당연히 학부모님께 통보하고, 생활교육위원회에 학생과 학부모님이 함께 참석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수업 장면을 캡처해 페이스북 등에 올리는 일이 이틀 연속 발생했다.
이 교장은 "이런 행위는 교사의 초상권을 침해하는 위법 행위이며 모욕이나 저작권 위반 등 법률을 위배할 수 있는 심각한 행동이다"고 지적했다.
23일 교육계에 따르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면서 교사들의 초상권 침해가 현실화하고 있다.
교사들이 가장 크게 걱정하는 문제는 학생들이 원격수업 화면을 캡처해서 교사 외모를 평가하거나 캡처 후 딥페이크(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영상에 합성하는 기술)를 이용해 음란물을 만드는 것이다.
그동안 교사들은 이런 이유로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을 비롯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개인 신상이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해 왔다.
한 고교 여교사는 "한 번 캡처된 사진은 영원히 인터넷상에서 남게 된다"면서 "얼굴이나 교사 실력 품평을 넘어서 합성 사진으로 음란물이 만들어지지나 않을까 여교사들이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청소년이 많이 사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교사 사진을 올리면서 얼굴을 품평하거나 여성 교사를 성적 대상화하는 게시글이 다수 발견됐다.
청소년이 많이 사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교사 사진을 올리고 부적절한 품평을 한 게시글 캡처[온라인 캡처=연합뉴스]
실제 성착취물이 제작·유포된 텔레그램 'n번방'에는 현직 교사 사진을 합성하고 능욕하는 '여교사방'이 운영되기도 했다.
교육부는 이달 초 신학기 개학 준비 추진단 영상회의를 열고 "원격수업 영상 자료를 악용해 교육 활동을 침해할 경우 법령에 따라 가해 학생을 조치하고 피해 교사를 보호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원격수업 중에 선생님이나 친구를 무단으로 촬영해 배포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긴 원격수업 실천 수칙을 학교 현장에 배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원격수업 이후 이런 교사 초상권 침해 사건이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담임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교사 사진을 캡처해 유포해서는 안 된다고 주기적으로 안내하고 학생들이 잘 따르도록 해야 한다"면서 "교육부와 교육청에서도 공익 광고와 캠페인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격수업은 또 매시간이 사실상 학부모 참관 수업이라 교사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
EBS나 인터넷의 이른바 '일타 강사'(수강생·매출액 1위 강사)에 익숙한 학부모들이 자녀들과 수업을 보면서 강의의 질을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혼자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고군분투하는 초중고 교사들은 스튜디오에서 조명과 각종 영상 효과가 입혀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스타강사와 비교당하는 것이 억울하다고 말한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급작스럽게 시작된 원격수업을 제대로 준비도 못 한 채 하고 있다"면서 "TV에 나오는 일타 강사들과 현직 교사들을 일대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사는 "교사의 역량은 교과 수업뿐 아니라 학생 지도 등 여러 측면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원격수업에서는 이런 점이 무시되는 점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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