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 간격 유지" 방송 공허했다…시민 쏟아진 여의도 벚꽃길
4일 오후 3시30분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인근의 한 편의점 앞에 사람들이 줄 서 있다. 이가람 기자
“안전거리 2m 간격을 유지해주시기 바랍니다”
4일 오후 1시50분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2번 출구를 나서자 길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들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영등포구청이 안내방송을 하고자 준비한 스피커였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안내방송과 달리 이날 여의도에는 벚꽃을 보러 온 시민들이 쏟아졌다. 여의나루역 2번 출구 앞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 박모(68)씨는 “봄철 평상시 주말과 비교했을 때 3분의 2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파가 많아 사회적 거리두기 무의미”
서울시는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2020년 여의도 벚꽃축제를 취소했다. 대표적인 벚꽃 명소인 국회의사당 뒤편 여의서로(윤중로) 1.6㎞ 구간도 1일부터 10일까지 폐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날 상춘객들은 폐쇄된 곳을 피해 다른 곳으로 모여들었다. 마포대교 남단부터 여의도 63빌딩 앞까지 이어지는 여의동로와 여의도 한강공원은 미통제 구역이기에 이곳으로 몰린 것이다. 신종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현장을 통제하던 경찰은 “인파가 너무 몰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달라고 요청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고 말했다.
“아이들 답답해 하는데...”
시민들은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거나 벚꽃을 감상하며 길을 걸었다. 편의점 즉석 라면 조리기 앞에는 라면을 끓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은평구에서 자녀를 데리고 온 한 부부는 “어린이집이 문을 닫아 아이들이 너무 답답해 하길래 벚꽃도 볼 겸 바람 쐬러 나왔다”며 “생각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곳은 코로나와 전혀 무관한 곳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여의도 한강공원 풀밭에도 삼삼오오 모인 시민들이 돗자리를 펼쳐놓고 앉아있었다. 돗자리 사이의 거리는 멀었지만 한 돗자리 안에 3~4명이 밀접하게 모여 치킨과 맥주를 나눠먹거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경기도 하남시에서 왔다는 중학교 2학년 이모(14)씨는 “개학이 자꾸 미뤄져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며 “너무 답답한 와중에 주말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벚꽃을 보기 위해 놀러 나왔다”고 말했다.
“통제 안타깝지만 협조 부탁드린다”
앞서 서울시는 주말에 상춘객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주말 동안 여의도 한강공원 인근 버스정류소 7곳을 폐쇄했다. 그러나 이날 여의도 벚꽃길과 한강공원을 찾은 시민 20명에게 물은 결과 17명은 지하철을 타고 왔다고 답했다. 버스정류소 폐쇄 등 여러 조치가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다.
이날 여의도뿐 아니라 다른 주요 벚꽃 명소도 출입이 전면 통제됐다. 창원시는 지난달 27일 국내 대표 벚꽃축제인 진해군항제를 취소했다. 또 다른 벚꽃길로 유명한 서울 양재천도 오늘부터 이틀간 폐쇄됐으며 ‘제3회 양재천 벚꽃 등(燈) 축제’ 역시 취소됐다.
유귀현 영등포구청 언론홍보팀장은 “여의동로를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해 구청 직원과 경찰 등 3000여명이 순찰을 돌며 시민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을 장려하고 있다”며 “시민들이 벚꽃을 즐기기 좋은 시기에 통제를 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신종 코로나 예방을 위한 조치이니 최대한의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가람·편광현 기자 lee.garam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