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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3일 법 개정을 통해 액상형 전자담배의 판매 금지까지 추진키로 하는 등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놓은 이유는 대처가 늦었다가 자칫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같은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가습기살균제의 경우 관련 폐질환이 2006년 처음 보고됐으나, 정부의 역학조사는 5년 뒤인 2011년 시작돼 2016년에야 판매가 중지됐다. 이 과정에서 사망자만 약 1,500명이 발생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보듯 유해성이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면 늦다"며 선제대응 의지를 피력해왔다.

미국 내 액상형 전자담배 관련 폐질환 사망자 수 증가에 더해 국내에서도 의심환자가 발생한 것도 사용중단 권고의 계기가 됐다. 지난 15일 기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발표한 액상형 전자담배관련 폐질환 사망자 수는 33명, 폐손상 사례는 1,479건에 달한다. 특히 사례자의 79%가 35세 미만이고, 18세 이하도 15%로 젊은 층이 대부분이다. 지난 2일 발생한 국내환자 역시 30세 남성으로, 폐렴 등 폐손상 증상을 보이기 2~3개월 전부터 쥴ㆍ릴베이퍼 등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도 20~30대 젊은층은 물론 청소년들에 대해 “각급 교육청ㆍ학교를 통해 액상형 전자담배의 위험성을 알리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전자담배 제조사들이 젊은 소비자들을 겨냥해 초콜릿ㆍ레몬 등 다양한 향의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데, 이때 첨가되는 향료나 대마유래성분(THC), 비타민 E아세테이트 등이 폐질환 유래성분으로 의심되고 있다. 국내 판매되는 36개 제품에도 최소 1개 이상의 향료가 포함된다. 지난해 복지부의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전자담배 사용률은 2.7%이며, 남자 청소년의 사용률은 2017년 3.3%에서 지난해 4.1%로 크게 증가했다.

중증 폐질환의 원인 물질이 그동안 지목돼 온 THC만은 아닐 수 있다는 판단도 긴급 대책을 내놓은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액상형 전자담배 회사들은 미국에서 발생한 폐질환 원인이 국내 제품에는 포함되지 않은 THC 때문이라고 주장해 왔고, 실제 미국에서 발생한 중증 폐손상 환자의 78%가 THC를 함유한 제품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날 복지부에 따르면 약 10%는 니코틴만 함유한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권고 수위를 높였지만 현행법상 판매금지 등 강제성 있는 제재를 할 수는 없다. 폐질환 의심사례 확인만으로도 향이 첨가된 액상형 전자담배를 판매 금지한 미국과 달리, 우리 ‘제품안전기본법’은 안전성조사에 따라 제품의 위해성이 확인된 경우에만 제품 수거 등의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로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실질적 조치는 니코틴 용액 수입 시 통관검사를 강화하거나 인터넷상 광고ㆍ판촉을 감시하는 정도다.

복지부가 관련법 개정을 강조하는 이유다. 복지부는 연내 국민건강증진법을 개정해 청소년 흡연 유발 등 공중보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 제품회수ㆍ판매금지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담배 내 가향물질 첨가를 금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담배 제품의 관리체계를 복지부로 이관하는 ‘(가칭)담배제품 안전 및 규제에 관한 법률’ 제정도 검토하고 있다. 정영기 복지부 건강증진과장은 “미국 등 상당수 국가들은 경제부처가 아닌 보건부처에서 담배를 관리한다”며 “현재 기재부 소관인 담배 제조ㆍ허가 등 관리체계를 건강권 중심으로 재정비한다는 취지로 관련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담배의 정의에 액상형 전자담배를 포괄하는 내용의 담배사업법 개정조차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연내 법개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관련 개정안은 지난 2016년부터 4차례 발의됐지만 여야 의원들의 미온적 태도로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의 문턱을 넘은 적이 없다. 다만 건강증진법은 보건복지위 소관이고 최근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이 모두 액상형 전자담배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한 만큼 복지부가 기대하고 있다.

전자담배업체들의 대응도 변수다. 이날 정부 대책 발표에 업체들은 “우리 제품에는 논란 성분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강조하며 선을 긋고 있지만, 향후 공청회나 집회 등 집단 움직임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교수는 “정부와 국회는 당장의 급성 증상이 아니더라도 20~30년 후의 국민건강영향을 위해 입법을 조속히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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